상품검색
게시글 검색
김기춘의 흑역사를 살펴보자.
#문자당 조회수:6152 추천수:8
2016-11-19 07:30:12

 

 

최순실 씨의 각종 이권개입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있는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최씨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소개로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김기춘 씨는 최순실을 알지도 못하고 전화통화도 한 적 없다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부야 곧 밝혀지겠지만 이 기회에 김기춘 씨의 흑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 전 장관
출생
1939년 11월 25일, 경상남도 거제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형사법 박사
수상
1990년 청조근정훈장 
1990년 5.16민족상 안보부문 
1987년 황조근정훈장
경력
2013.08~2015.02 대통령비서실 비서실장 
2012.08~2013.08 제3대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
 
 
▶ 1958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3학년 때인 1960년 말에 제12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

▶ 1963년과 1964년 해군 해병대 법무관으로 근무하면서 서울대 대학원을 다닐 때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았고 1991년부터 1997년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을 따서 만든 ‘정수장학회’의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지냄.

▶ 군복무를 마친 뒤 광주에서 검사생활을 시작. 그의 장인이 된 박찬일 변호사가 김기춘을 사위로 삼기 위해 김기춘의 첫 부임지가 광주가 되게 만들었다는 말도 있음.

▶ 1967년 부산지검 검사, 1969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71년 8월 법무부 법무과 검사로 근무.

▶ 1972년 유신헌법 제정 실무팀의 일원으로 참여해 핵심적 역할. 김기춘은 긴급조치권·국회해산권 등 핵심조항이 담긴 유신헌법 초안작업을 맡은 것으로 알려짐.

▶ 김기춘은 유신헌법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섬. TV에 나와 유신헌법을 설명해 유명세를 탐. 1973년 유신헌법 등 법률개정작업의 공로를 인정받아 법무부 인권옹호과 과장으로 특진. 이후 신직수 중앙정보부장의 보좌관으로 발탁.

▶ 1974년부터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 부장, 중앙정보부장 비서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지냄.

▶ 그는 1974년 문세광 사건 수사에서 세운 공으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승진.

▶ 1979년 청와대 법률 비서관 2년 뒤 법무부 검찰국장.

▶ 1981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직 전전.

▶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뒤 1988년 12월 최연소 검찰총장(49세)

▶ 1991년 법무부 장관으로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총지휘

▶ 1992년 12월 부산지역 기관장들을 모아 지역감정을 조장해 여당 후보를 지원하는 내용을 의논했던 초원복집 사건 주도.

▶ 1993년 김기춘법률사무소를 개소하여 변호사로서 활동.

▶ 1996년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고향 거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2000년과 2004년 선거에서 당선되며 3선 의원

▶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탄핵심판 때 검사 역할

▶ 2008년 국회의원 공천 탈락.

▶ 2009년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으로 취임. 2012년 제3대 이사장으로 재선임.

▶ 2013년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1. 유신헌법 기초

1972년 법무부 과장 시절 유신헌법 제정 당시 실무팀의 일원으로 참여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기춘 과장이 이미 유신헌법을 다 만들어 놓아서 자신들은 할일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나 김기춘 본인은 부인하고 있음.

 

2. 문세광 사건 조사

1974년 8월 15일 재일교포 청년 문세광 육영수 저격. 현직검사로 중앙정보부장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되어 있던 김기춘은 후일 이렇게 자랑함.

“문세광을 심문할 때 소설을 하나 읽고 들어갔다. 테러리스트 얘기를 다룬 ‘자칼의 날(The Day of Jackal)’이라는 소설이다. 문에게 ‘당신 이책 읽어봤나’라고 했다. 그러자 문이 ‘읽어봤다. 선생님도 읽었냐’고 하더라. 상당히 반가워하는 표정을 짓더라. 그 소설에 관해서 주거니 받거니 했다. 이전까지 진술을 거부하던 문세광은 이때부터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문세광 수사에 김기춘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고 함. 시간적으로도 김기춘이 문세광을 만났을 즈음에는 이미 다 털어놓은 상태였다고 함.

덧붙이면 육영수는 문세광이 쏜 탄환에 맞지 않았음.

 

3. 초원복국집 사건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기춘은 1992년 12월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 초원복국집에 당시 부산시장, 경찰청장, 안기부 지부장 등을 불러모아 김영삼 후보 지원을 결의(?)함. 정주영 후보 측에서 이를 녹음하여 폭로했으나 PK 지역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남이가'라며 김영삼에게 몰표가 쏟아져 김영삼 당선에 톡톡이 기여함.

 

4.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7인회' 멤버로 2013년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됨

세월호 사건 당시 구원파가 김기춘을 향해 '우리가 남이가!'라며 반발함

그리고 2015년 3월 성완종 리스트에서 김기춘이 다시 등장.

2016년 11월 현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후 배후에서 사건수습을 배후조종하고 있다고 알려짐.

 

댓글[0]

열기 닫기